티스토리 뷰

쌍방울 그룹, 어떻게 나아갔을까?


쌍방울 그룹 하면 어떤 이미지가 여러분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무래도 요즈음은 TV를 장식하고 있는 구설수로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하지만, 옛날의 쌍방울은 구설수 같은 것보다는 온 가정에 있는 속옷 브랜드로 유명한, 뭔가 친숙한 이미지의 기업이었답니다. 여러분들도 쌍방울이나 비비안 같은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이 쌍방울이 단순한 속옷 브랜드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그룹 계열사까지 이룩한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최근 이 기업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지속적으로 언론에서 쌍방울 그룹이라는 표현을 하면서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따라서 오늘 꿀팁아지트에서는 이 쌍방울 그룹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오늘 글에서는 최대한 정치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쌍방울 그룹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중점적으로 하려고 하니까요! 안심하시고 편하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요?

쌍방울 그룹 로고는 두 개의 방울이 잘 상징화 되어있습니다.

 

오늘 글의 목차(Contents)
1. 쌍방울 그룹의 역사
  - 전라북도 익산에서 출발
  - 형제상회의 성장
 2. 쌍방울 그룹의 성장 배경
  - 수도권 진출
  - 사업 다각화

3. 위기의 쌍방울

4. 이후

 

쌍방울 그룹의 역사

전라북도 익산에서 출발한 쌍방울 그룹


여러분은 혹시 쌍방울 그룹이 언제 시작된 회사인 줄 아시나요? 이 회사의 시작은 무려 1954년이었는데요. 이봉녕과 이창녕이라는 이름의 두 형제는 전라북도 익산시의 형제상회라는 속옷 도매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두 형제 중에서도 형제상회를 주도적으로 경영했던 것은 형은 이봉녕 회장이었는데요. 그는 16살이 되던 1936년 함경북도로 떠나가 그 곳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생활고를 해가며 밑천을 마련하고는 동생인 이창녕 씨와 옷 장사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고 해요. 해방 후 고향에 들어와 무명 베 장사를 하던 형제는 6.25 전쟁 당시에는 양말을 장이 열릴때마다 대량으로 팔면서 점차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쌍방울 그룹 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에게 6.25 전쟁은 위기이자 기회가 되었습니다.

 

형제상회의 성장

이렇게 형제 상회를 통해 속옷 장사를 하던 형제는 점차 자본이 모이자 제조업에 도전하게 됩니다. 물론 그 대상은 속옷이었습니다. 그들은 1963년, 형 이봉녕과 동생 이창녕의 뒤에서 이름을 따서, 쌍녕섬유공급사라는 이름의 속옷 제조업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참고로 이 이름이 여러분이 오늘날 알고 계신 쌍방울의 모태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쌍방울이라는 회사 이름과 더불어 속옷 브랜드라는 점에서 이상한 상상을 하곤 하시지만..쌍방울이라는 이름의 진실은 봉녕과 창녕 두 형제의 이름에서 따왔던 것이라고 해요. 그 둘의 이름인 령은 방울이라는 이름을 가졌기에 쌍방울인 것이죠!!

 

쌍방울의 성장 배경

(1) 수도권 장악을 통한 시장 선점


어찌되었던, 그들은 1960년대에 쌍방울이라는 브랜드를 걸고 우리나라 메리아스 시장에 도전을 하는데요. 형인 이봉녕은 정말 다양한 업체들이 경쟁하던 이 속옷 시장에서 수도권 진출이라는 목표에 집중하였고, 그 목표가 먹혀들면서 쌍방울은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쌍방울은 1970년대 들어 내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전국 1위 공단 내에 1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설비를 갖춘 공장을 완공했으며, 업계 최초로 일관 생산 체계를 통해 시장의 2대 강자로 자리잡게 됩니다.

수도권 공략에 성공한 쌍방울 그룹

 

(2) 사업의 다각화

이렇게 잘 자리잡은 쌍방울은 1979년 창업 회장 이봉녕씨의 아들 이우철 씨가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다시금 큰 도약에 나서는데요. 사업 다각화를 통해 쌍방울은 유아복 생산 뿐 아니라, 무주리조트, 팔봉컨트리클럽 등의 리조트 사업, 쌍방울상사라는 종합무역상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시작합니다.

 

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쌍방울은 1988년에는 마이크로웨어 컴퓨터를 인수해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전화기 시장, 나아가는 쌍방울 레이더스라는 이름의 프로야구 구단을 창설하기에 이릅니다.

 

참고로 1993년에는 쌍방울 그룹에는 총 22개 계열사가 있었고, 그 계열사들의 자산 규모를 합치면 무려 1조 4200억 원에 이르렀다고 해요. 종업원 수 또한 6천 명이 넘어서 당시 재계 순위 51위에 이를 만큼 거대 기업이 된 것이죠.

 

쌍방울의 위기


원래 기회와 위기는 같은 곳에서 나온다고 들 하죠. 쌍방울의 위기 또한 이 사업 다각화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쌍방울은 섬유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내부적인 판단에 따라 대규모 리조트 개발 사업에 나섰는데요. 여기에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를 위해 제 2금융권으로 자금을 차입하기까지 하는 등 무리하게 돈을 사용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는 IMF 사태라는 전국가적인 위기와 맞닥뜨려버렸습니다. 1997년 말의 imf 외환에 기는 쌍방울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흔들림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쌍방울그룹 전체의 부채는 1조 1780억 원이었는데, 이 중 무주리조트 관련 부채가 8천700억원에 달했으며 그 중 7천억원이 제2금융권에서 조달했던 것이었다고 해요. 그렇게 쌍방울은 결국 회사정리 절차를 밟고 법정 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쌍방울 그룹과 경제 위기

 

이후의 쌍방울


이후의 쌍방울은 여러 업체를 전전하면서 대한전선에 매각되었다가 현재는 특장차 제조업체인 광림이 인수를 하게 됩니다. 광림은 예전의 쌍방울 계열사들을 모두 사들여 다시금 쌍방울 그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여기부터의 얘기는 사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오늘 글에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해요.

 

정리해보자면, 오리지널의 쌍방울 그룹은 전후 공격적인 수도권 시장 공략을 바탕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성장을 거듭했지만, 결국 IMF 위기를 만나 좌초했다..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글 읽어보기

2022.09.18 - [회사 꿀팁 (취준생)/회사 분석] - 임세령 부회장의 대상 그룹은 어떤 회사일까?

 

임세령 부회장의 대상 그룹은 어떤 회사일까?

대상 그룹 알아보기 최근, 영화배우 이정재씨의 수상 소식과 함께, 함께 참석한 그의 연인 임세령 부회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나, 그녀가 속한 대상이라는 회사에 대해서

honeytipagit.tistory.com

2022.02.20 - [생활 꿀팁/이슈, 상식 꿀팁] - 씨유 보광그룹 역사와 삼성과의 관계

 

씨유 보광그룹 역사와 삼성과의 관계

보광그룹이 어디야? 이번 시간에는 최근 아모레 퍼시픽의 서민정씨가 이혼한 상대방인 남편 홍정환씨가 속한 회사인 보광그룹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아모레퍼

honeytipagit.tistory.com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